“자네, ‘버닝’이란 것 아나?”
“‘버닝’이라니, 그게 뭔데……?”
“피온에서 이벤트로 하는 시간 죽이기 말이야, ‘버닝(全燒)라고 쓰지.”
“PC방에서 두어 시간씩 켜두던 것 말이지, 그게 버닝이던가?”
“버닝 이지. 비록 결과는 똥망일망정, 나는 그 버닝을 대할 때마다, 모자를 벗고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거든…….”
“그건 또 왜?”
”내가 존경하는 이벤트니까…….”
“존경이라니……, 존경할 이벤트란 것도 있나?”
“있고 말구. 내 얘기를 들어 보면 자네도 동감일 걸세. 보통 PC방 점유율로 게임의 흥행을 많이 가늠하거든. 출시한 지 한 일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아……. 한 이 년쯤 지난 뒤에 PC방 점유율이 떨어지면 내놓는 건데, 보상이 마치 혜자 인것 같지만, 막상 보상을 까보면 그 정도는 아니라네.”
"버닝에 대한 조예(造詣)가 매우 소상하신데……."
“버닝에 나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.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. 이게 시간 죽이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재미가 기막히거든. 패키지나 빠칭코 처럼 고급 현질 축에는 못 들어가도, 서민이 참여하기로는 그만이지…….”
“그래서 존경을 한다는 건가?”
“아니야, 생각을 해보라구. 몇시간씩 PC방에서 접속해서 게임을 하고 하면 보상이 좋아야 할 이치 아닌가 말야……. 그런데, 보통 보상이 좋지 않아 많이들 욕을 하지. 하지만 욕을 하면서도 계속 이 짓을 한다는, 이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. 허다한 값나가는 패키지를 제처 두고, 내가 버닝 앞에 절을 하고 싶다는 연유가 바로 이것일세.”
'“그럴싸한 얘기로구먼. 보상이 좋지 않아 욕을 하면서도 계속 참여를 한다……?”
“그저 욕만 하고 다음부터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, PC방 풀참 대신 집 버닝만 해서 정신 승리까지 한다,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지……. 남들은 나를 게임 잘하는 사람으로 치부하지만, 키보드 하나로 살아 왔다면서, 나는 한 번도 월클 이상을 찍어 본 적이 없다네. ‘망건을 십 년 뜨면 문리(文理)가 난다.’는 속담도 있는데, 프로3 승격 결정전 한번 할 때마다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마냥 긴장을 해야 하다니, 망발도 이만저만이지…….”
“초심불망(初心不忘)이라지 않아……. 늙어 죽도록 슈챔 찍을 수만 있다면 오죽 좋아…….”
“그런 건 좋게 하는 말이고, 잘라 말해서, 버닝만큼도 문리가 나지 않았다는 거야……. 이왕 게임이라도 하려면, 하다못해 버닝급수(級數)는 돼야겠는데…….”
“욕을 하면서도 참여는 한다는 거, 멋있는 얘기로구먼. 그런 얘기 나도 하나 알지. 버닝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만…….”
“무슨 얘긴데……?”
“피온4 전 오래된 얘기지만, 선배 한 분이 이벤트로 받은 아이콘 팩을 현생 출장 가느라 인벤토리에 둔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나.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 아이콘 팩을 까봤는데 재평가 들어가기 직전이라 아이콘 선수 가격이 떡상을 해서 만약 출장 전에 개봉했으면 불꽃도 안뜰 것 같은 그 아이콘팩 맛이 그렇게 좋은 수가 없었더란 거야. 그 뒤부터 그 형님은 선수팩을 으레 며칠씩 묵혀 두었다가, 점검 하루 앞서 개봉하는 것이 가풍(家風)이 됐다는데, 떡상 하기 직전이 맛이 좋다는 게, 뭔가 인생하고도 상관있는 얘기 같지 않아……?”
“떡상 하기 바로 직전이란 그 ‘타이밍’이 어렵겠군……. 떡상 이란 말에 어폐(語弊)가 있긴 하지만, 이를테면 챔스 코인이니 생제 코인이니 하는 것들도 떡상에 하는 맛이라고 할 수 있지……. 그건 그렇다 하고, 우리 나가서 PC방 시간이나 채우러 갈까? 넥슨에 경례도 할 겸…….”
김소운 작가님의 수필 "피딴문답"을 각색해 보았습니다.
피3 시절 은전한닢을 각색해서 굴리트한장이란걸 시티에 썼었는데 아주 예전이라 글이 날아간거 같아 옛날 생각할 겸 잠시 써봤습니다.
재미삼아 보세요..^^